법과 원칙, 공공성, 중립성을 강조하는 기업이 법의 명령을 외면한다면, 과연 그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말할 자격이 있을까. 보도전문채널 YTN(와이티엔)의 최대주주인 유진그룹 안에서는 사법부의 판결조차 종이 조각에 불과했다. 노동위원회와 법원이 잇따라 내린 부당해고 판정과 복직 명령은 이행강제금이라는 가격표가 붙는 순간 무력해졌다. 유진그룹 지주사인 유진기업과 홍성재 한국노총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 유진기업 노동조합위원장의 얘기다.

2022년 9월 유진기업 최초의 노동조합이 설립됐다. 초대 노조위원장인 홍 위원장은 노조 설립 1년 뒤인 2023년 9월 해고됐다. 사측은 직장 내 괴롭힘, 해킹, 명예훼손 등 여러 이유를 들어 그의 해고를 정당화했다. 하지만 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는 "사실로 인정할 만한 근거가 부족하거나 징계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비위 정도가 중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잇따라 부당해고 판정을 내렸으며, 지난 6월 서울행정법원도 홍 위원장의 손을 들어줬다. 노동위·법원에서 패소한 회사는 구제 명령을 이행해야 한다. 하지만 홍 위원장의 복직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유진기업은 '배째라' 식으로 버티기에 들어갔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입법된 근로기준법에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33조에선 구제 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사용자에게 3000만 원 이하 이행강제금을 연 2회, 최대 2년까지 부과·징수하도록 규정한다. 문제는 그 이후에는 사측이 아무리 복직을 거부해도 이행강제금 추가 부과·징수가 불가능하다는 데에 있다. 구제 명령 이행 시까지 계속 부과되지 않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선 '2년만 버티면 끝'이라는 전략을 펼칠 수 있다. 이 같은 맹점을 알고 있는 사용자에게 이행강제금이란 부담이 아닌 계산 가능한 비용일뿐이다. 

유진기업도 이행강제금을 복직 명령 이행 회피 수단으로 활용 중이다. 유진기업은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쳐 총 5557만 원의 이행강제금을 납부하면서도 홍 위원장에 대한 사법부의 복직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 남은 한 차례 이행강제급을 더 납입하더라도 대기업집단(공시대상기업집단)인 유진그룹의 지주회사에겐 결코 부담스럽지 않은 규모다. 더욱이 유진기업은 법원에서 부당해고 판정을 내릴 것을 대비해 지난 1월 인사위원회를 열어 홍 위원장에게 두 번째 해고장을 발부한 것으로 파악된다. 진작에 버티기 전략을 준비했다고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부당해고 상태인 홍 위원장은 지난 15일 치러진 제2대 유진기업 노조위원장 선거에서 다시금 조합원들의 선택을 받았다. 부당한 상황 속에서 조합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로 선택됐다는 측면에서 노조의 정당성과 상징성을 함께 확인한 결과라는 게 유진기업 노조의 설명이다. 노조 측은 "법원의 복직 명령조차 이행하지 않고 단체교섭과 노조 활동에 대한 조직적 제약이 이어지고 있다"며 "법적 대응, 행정기관과의 협의, 시민사회와의 연대, 주주행동 등 다양한 수단을 적극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유진기업은 특수목적법인(SPC)인 유진이엔티(유진기업 지분 51.00%·유진그룹 계열 동양 지분 49.00%)를 통해 보도전문채널 와이티엔(유진이엔티 지분 39.17%)에 지배력·영향력을 2024년 2월부터 행사하고 있다. 방송사를 가진 기업이라면, 그중에서도 보도전문채널을 보유한 회사라면 마땅히 상식적 수준 이상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해야 할 것이다. 부당해고 피해자를 구제하라는 판정에 불복한 채 돈으로 때우는 회사에게 과연 언론의 중립성과 공공성을 위해 존재하는 보도전문채널의 대주주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또한 유진기업은 올해 ESG 경영을 강화하겠다는 명분으로 ESG 전담 부서를 신설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기업이라면 당연히 사법부의 복직 명령을 성실하게 이행해야 하리라. 

정부와 국회도 그 마땅하고 당연한 상식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제도 개선을 서둘러 진행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 현행 부당해고 구제 제도는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노동 존중'을 약속한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고, 민주노총 출신 인사가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지명된 시대다. 이제는 제도 개선을 단행해야 할 시기다. 매출 규모와 연동해 이행강제금 상한액을 조정하고, 구제 명령을 이행할 때까지 이행강제금을 부과토록 해야 한다. 또한 반복적으로 구제 명령을 불이행할 시에는 형사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입법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 그래야만 돈으로 복직 명령을 사면받는 일이 근절될 것이다. 더욱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보도전문채널의 공공성 강화'라는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보도전문채널의 미래를 논하는 회사가 정작 자사 이슈에 대해선 공공성을 훼손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건 아닌지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파악해 대처해야 한다.

노동이 존중받고, 노동법이 실효성을 갖는 사회를 만드는 건 항상 이런 사례에서부터 출발한다. 돈으로 안 되는 일은 없다고 믿는 자들, 그들이 법을 시험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슬롯 사이트 에그 슬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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